임진년 1월3일 눈내리는 밤에...

 8시 퇴근길에 미끄러운 땅을 미끄러지듯 종종걸음으로 걸었다.
 지하철에 올랐고 음악을 들었다. '슬픈인연'
 흐르는 그 시절에 너를 또 만나서 사랑할 수 있을까~~~~~
 
 다시 듣고 다시 듣고 다시 들으며 퇴근길이 끝날 때까지 다시 들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애잔함과 잔잔하게 밀려오는 외로움인가?
 산다는 것은 이처럼 희와 비, 사랑과 외로움의 언저리를 오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산다는 건, 살아간다는 것은 한 인간에게 대체 어떤 의미일까?
 아침8시부터 퇴근하는 8시까지, 꼬박 반일,
 난 무엇을 위해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
 이는 왜 살아가는가에 의문과 닮아 있다. 
 
 나는 그래서 생각해야 한다. 왜 일해야 하며, 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너무 깊지도 너무 얕지도 않을 정도의 수위에서...

 살아간다는 건 대체 무엇일까? 라는 생각이 드는 그런 눈 오는 밤 중에 몇자 남긴다.

by 아웃복서 | 2012/01/03 22:43 | 버거운 이야기 | 트랙백

오늘의 나를 죽이자!!

 오늘의 나를 죽이고 내일의 나를 만나야 한다.
 오늘의 나를 죽여야 내일의 내가 태어난다. 죽는 법을 배워야 한다.
 창조하는 자들이여 너희들의 삶에는 쓰디쓴 죽음이 무수히 많아야 한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 수많은 부품이 필요하듯이, 자신이 자신이기 위해서는
 놀랄 만큼의 많은 것이 필요하다. 그것들 전부가 내 일부이고,
 나라는 의식 그 자체를 만들어 낸다. 
 하지만, 그것들이 동시에 나를 어느 한계로 제약하기 마련이다. 
                                                
                                                                           - 공각기동대 중에서 -

 추상적인 공자님 말씀보다 구체적인 지침과 전략이 더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진정한 나를 찾는 다는 것은 철학의 길, 전략의 길, 아님 둘 모두의 길을, 어떻게 이를수 있을 것일까?
 대학교 1학년 2학기 심리학 수업에서 난 200여 명의 학생들 앞에서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해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박수 갈채를 받았고, 누군가는 눈물 짓기도 누군가는 흐믓한 웃음을 짓기도 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났다.
 7년에 한번꼴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총체적인 고민의 사간이 오곤 한다고
 그러니, 자신의 정체성을 잘 갈고 닦아서 7년 후에 있을 지금, 현재를 잘 준비하라고
 심리학 교수님이 말씀 하셨다.

 실제로, 난 앞으로 어떻게 내 삶을 개척해 나갈지 어떤 삶의 태도를 가져야 할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총체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전략은 가지고 있다. 하지만 삶의 철학에 대해 묻는다면,
 약간의 긍정과 부정, 약간의 낙관과 비관, 약간의 이상과 허무, 약간의 감사와 분노
 약간의 경제적 사고와 도덕적 사고 등이 혼재되어 여러가지 것들 사이에서
 비틀비틀 거리고 있다. 철학적으로 비틀거리고 있다.

 삶이라는 것이 생각하면 할수록 알쏭달쏭한 것이란 걸 새삼 느낀다. 
  막연하다. 뿌옇다. 7년전의 오늘 보다 더 막연하고 뿌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스스로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어야 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남들이 보기에 다 잘되고 있다고 해서 삶에 대한 신념의 첫 발도장을 찍는 것을
 시기상조로 여겨 차일피일 미루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사회인으로서 나아갈 초석을 닦는데 7년이 걸렸다.
 그 7년의 세월을 나름 잘 버텨냈다. 적당한 과장과 생략을 덧 붙인다면 인생 역전극일 정도다. 
 겉으로는 인생역전으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속도 과연 그럴ㄹ까? 아니 절대로 아니다.

 내가 바라던 나의 모습은 이 정도에서 만족하고 그칠 것이 아니다. 
 더 멋지게 살아가길 바란다. 발판을 마련하는데 7년이 걸렸다.
 그 발판만을 마련한 것 뿐이다. 

 '역치'일반적으로 반응이나 현상을 일으키게 하기 위하여 계(이어맬 계
㉠이어매다
㉡잇다
㉢혈통
">系
)에 가하는 물리량의 최소치.에너지

 잔등을 위한 역치의 지점에 난 서 있는 것이다. 
 단, 사전적 의미의 역치와 현재 내가 처한 역치의 차이는 전자는 반등을 위한 최소 에너지를 뜻하지만,
 후자는 수직 반등에서 수직 낙하 사이의 모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최소 에너지를 뜻한다.
 경우의 수는 무수히 많다. 의외로 강한 사람도 한 순간에 무너지지 않는가?
 
 스스로가 원하는 삶을 위해 날아오를지, 아니면 나락으로 떨어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이에 대한 해답은 내 가슴속에 있다. 지금은 없지만, 있게 된다면 내 가슴속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내 가슴에 불을 지피자. 힘차게 내 가슴을 부타게 하자. 에너지 넘치는 삶을 다시 한번 맞이해 보자.
 에너지 넘치는 삶은 우연히 홀로 찾아오는 법이 없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삽으로 연료를 퍼서 가슴이란 용광로에 집어 넣어야 가슴을 힘차게 타오르기 시작할 것이다. 

 서두의 여는 글처럼, 현재의 나를 죽이고 새로운 나를 창조하자. 이 뜻을 가슴에 새기자.
 내가 볼 수 있는 것 만큼, 내가 들을 수 있는 것 만큼, 내가 노력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을 다하자. 
 더 이상 어리버리함으로 타인들에 비칠 나를 왜곡시키지 말자. 좀 더 자신감을 가져도 되지 않는가?
 가식의 종착역은 총체적인 공허함이라는 것을 잘 알지 않는가?

 앞으로 이와 같은 나의 다짐이 몇 번을 반복할지는 알 수 없지만, 맹세한다.
 무한 반복적으로 똑같은 다짐을 해 나갈 지라도 절대 포기하진 않겠다. 

 구호는 '정상에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는 나에게는 과저의 짐은 필요없다.
 철저히 새로운 내일을 위해 싸그리 비우자. 새로움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자.
 내 스타일데로, 그렇게 내 스타일데로 받아들이면 된다.

 구호는 '정상에서'

 정상에서 보자.

by 아웃복서 | 2011/08/15 17:28 | 버거운 이야기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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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gjs3@knto.or.kr 장정숙 차장님

by 아웃복서 | 2011/07/08 17:38 | 가벼운 이야기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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